오스만 제국

작성자

카테고리:

오스만 제국의 성립과 발전

셀주크 튀르크가 무너진 뒤 여러 부족과 나라로 분열된 아시아 지역에서 13세기 말 튀르크 계통의 오스만족이 이들을 통합하여 국가를 세웠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으로 진출하여 발칸반도 남부를 차지하고, 술탄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메흐메트 2세 때에는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았다(1453).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불렸다.
16세기 초에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하여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종교적 지도자인 칼리프의 칭호도 획득하여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술레이만 1세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술레이만 1세는 헝가리를 정복하였으며, 유럽 연합 함대를 무찔러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북아프리카까지 세력을 확대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 무역을 장악하며 번영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정책과 문화

오스만 제국은 넓은 영토를 술탄이 직접 통치하는 지역과 총독을 보내 간접 통치하는 지역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이슬람교의 전통에 따라 제국 내 비이슬람교도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고, 즈야(인두세)만 내면 자치적인 공동체를 허용하는 관용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오스만 제국에서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혈통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유능한 사람들을 관리로 등용하여 통치에 이용하였다. 특히 술탄의 친위 부대인 예니체리는 정복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문화는 튀르크 전통을 바탕으로 페르시아, 이슬람, 비잔티움 문화 등이 융합되었다. 튀르크어로 쓰인 역사서와 문학이 발달하였으며, 건축에서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 등 웅장하고 화려한 이슬람 사원이 건설되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등 실용적인 학문이 발전하였고, 미술에서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세밀화가 유행하였다.

지즈야

비이슬람교도 성인 남자에게 부과하던 인두세이다.

커피 하우스

커피를 팔던 커피 하우스는 16세기에 등장하였다. 커피는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회복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17세기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밀레트

밀레트는 같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자치 공동체를 말한다. 오스만 제국은 각 밀레트에 종교뿐만 아니라 관습, 재판, 교육 등 폭넓은 자율권을 부여하였다.

예니체리

오스만 제국에서는 발칸반도의 크리스트교도 청소년을 징발하여 개종시킨 후, 군대나 관료로 충당하였다. 이들은 술탄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고위 관료로 등용되기도 하였다.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어 동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여러 유적을 통해 이스탄불이 번영하였던 모습을 살펴보자.

톱카프 궁전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거주하였던 궁전이다. 현재는 8만여 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으며,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랜드 바자르

‘바자르’는 지붕이 있는 시장을 뜻한다. 동서 교역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에는 비단, 보석, 카펫, 향신료, 도자기 등 세계 각지의 상품과 상인들로 늘 북적였다. 그랜드 바자르에는 현재도 5천 개가 넘는 상점이 들어서 있다.

술탄 아흐메트 사원

술탄 아흐메트 1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내부가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서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린다. 여섯 개의 첨탑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 오스만 건축 양식과 비잔티움 양식이 잘 어우러져 있다.

케밥

얇게 썬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을 긴 꼬치에 꿰어서 숯불에 구워 낸 요리로,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피데

납작한 모양의 발효된 빵으로, 그 위에 다진 고기나 치즈를 올려 먹는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음식이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