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로 개척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향신료, 비단 등 동방의 상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은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여 동방 상품의 가격이 치솟자 동방과 직접 교역하려는 유럽인들의 욕구가 커졌다. 항해술・조선술 발달, 나침반 사용으로 먼 거리까지 항해할 수 있게 되자 유럽인들은 신항로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개척에 앞장섰다.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의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였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가는 동쪽 항로를 개척하였다. 마젤란 일행은 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가로질러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였다.
아메리카 문명과 아프리카의 변화
유럽인이 침입하기 전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스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이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아메리카의 토착 문명은 신항로 개척 이후 아메리카 곳곳에 유럽인이 몰려들면서 급속히 파괴되었다. 에스파냐의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총으로 무장한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각각 아스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에스파냐는 원주민을 동원하여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수탈하였다. 또한 사탕수수, 담배 등을 재배하는 대농장을 건설하고 생산물을 유럽에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반면 원주민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유럽인이 옮긴 천연두, 홍역 등의 전염병까지 퍼지면서 원주민의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가 급감하자, 유럽인은 광산 개발과 대농장 경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동원하였다(노예 무역).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희생되었다. 노예 무역으로 아프리카는 인구가 줄어들고 남녀 성 비율이 불균형해졌다.
노예 무역의 비극
신항로 개척 당시 유럽에서 설탕의 인기가 높아지자 아메리카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할 노동력이 더욱 필요하였으나 원주민의 인구는 급감하였다. 이에 유럽의 여러 국가가 노예 무역에 뛰어들어 200년이 넘는 기간에 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을 아메리카에 노예로 끌고 갔다. 노예들은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였다.
유럽의 경제적 변화와 무역의 확대
신항로 개척으로 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였다. 대서양 무역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감자, 옥수수, 담배 등 아메리카 농작물이 유럽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유럽에서는 아메리카의 막대한 금과 은이 들어오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하여 물가가 크게 올랐다(가격 혁명). 이로 인해 도시 상공업자들이 큰 이익을 얻으며 성장하였다. 교역망이 확대되고 자본의 규모가 커지면서 식회사가 등장하고 보험 등 금융 제도가 갖추어졌으며, 상공업과 금융업이 획기적으로 발달하였다(상업 혁명).
신항로 개척 이후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인도 회사를 앞세워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였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인도의 면직물, 중국의 도자기・비단・차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많은 양의 은을 지급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교역망이 형성되고, 유럽이 확보한 시장은 훗날 산업 혁명을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주식회사
주식을 발행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본금을 받아 세워진 회사를 말하며, 동인도 회사가 대표적이다.
동인도 회사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아시아 지역과의 무역을 위해 만든 회사이다.
동인도 회사는 무역뿐만 아니라 군대를 보유하고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권한까지 가졌다.
콜럼버스의 날
미국 뉴욕의 한 자치구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콜럼버스의 모습이 실린 퍼레이드 차량에 올라타 거리를 행진하였다. 미국은 1492년 탐험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여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원주민 저항의 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것이 150년간 계속된 인종 학살을 일으켰다.”라며, 중남미 사람들에게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2002년 대통령령을 통해 미국과 중남미 일부 나라에서 공휴일로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었다.
지난 2021년에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콜럼버스의 날’을 앞두고 ‘원주민 저항의 날’ 선포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선포한 이 성명은 콜럼버스가 대륙에 도착하기 수천 년 전부터 거주하였던 원주민들이 아메리카 문명에 기여한 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