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
중세 말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를 판매하자, 루터는 이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신앙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독일 전역으로 퍼져 지지를 얻었다. 마침내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루터파가 공식으로 인정받았다(1555).
스위스에서는 칼뱅이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하며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영국에서는 국왕 헨리 8세가 영국 국교회를 세워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종교 개혁이 확산하면서 가톨릭교회(구교)와 신교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어 유럽 각지에서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 독일에서 일어난 0년 전쟁은 주변 여러 나라가 참가하면서 국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1648)이 맺어지면서 끝이 났고, 조약을 통해 칼뱅파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재정 군사 국가
중세 말 유럽에서 각 국가는 군사적 경쟁을 통해 주변 지역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후 16세기 유럽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인 세금 제도와 중앙 행정 기구를 갖춘 재정・군사 국가가 등장하였다.
국가 간 경쟁이 17세기 종교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재정・군사 국가들은 군대 규모를 더욱 늘리고자 하였지만, 강력한 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였다. 이에 세금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수출을 장려하고 관세를 높여 수입을 줄이는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상공 시민 계층의 상공업 활동을 보호해 주는 대신 이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으며, 원료와 상품 시장을 얻기 위해 식민지 확보에 힘을 쏟았다.
영국에서는 국왕과 의회가 상호 협력하면서 재정・군사 국가가 안정적으로 성장하였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국왕이 왕권의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고 의회를 억누르면서 국가를 운영하였다.
영국 의회 정치
16세기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찔러 해상권을 장악하고, 동인도 회사를 세워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트리와 상인, 제조업자 등 시민 계층이 성장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칼뱅의 교리를 따르는 청교도로서, 의회에도 진출하였다.
찰스 1세가 제 정치를 하며 의회를 무시하자 의회는 「권리 청원」을 제출하여 왕권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의회를 탄압하는 등 찰스 1세의 실정이 계속되자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는 내전에서 승리하여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청교도 혁명). 그러나 크롬웰이 독재 정치를 펼쳐 국민의 반감을 샀고, 그가 죽은 후 왕정이 부활하였다.
왕정복고 이후 제임스 2세는 의회를 무시하고 청교도를 탄압하였다. 의회는 제임스 2세를 물러나게 하고 그의 딸 메리와 남편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세웠다(명예혁명, 1688). 이듬해 의회는 「권리 장전」을 승인받았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국은 헌 군주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국왕과 의회가 협력하는 영국 재정•군사 국가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겪으면서 영국에서는 국왕과 의회가 협력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 영국은 강력한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의회의 협력으로 군사비 지출을 늘렸다. 늘어난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은행을 세워 자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였다. 이렇게 확보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국의 재정・군사 국가는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였다.
국왕이 주도한 프랑스의 재정・군사 국가
프랑스에서 권신수설을 철저히 믿으며 국왕의 절대적인 힘을 강조하였다. 그 가운데 재정・군사 국가를 확립한 국왕은 루이 14세였다. 루이 14세는 콜베르를 재무 장관으로 등용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펼치고, 관료제와 상비군을 정비하였다.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칭하였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자신의 막강한 권력과 부를 드러내었다.
이 과정에서 루이 14세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세금을 늘렸다.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세력을 넓히고 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무리한 대외 전쟁을 자주 벌이면서 국가 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또한 루이 14세가 신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자 상공업 분야에서 활약하던 신교도(위그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산업도 위축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전경과 루이 14세
루이 14세는 위대한 국가 건설을 자신의 최대 목표로 삼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그는 이전에 1만 5천 명에 불과하던 상비군을 65만 명까지 늘렸다. 군사비도 크게 늘려 군사비가 국가 재정의 75%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루이 14세는 전쟁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였나요?
루이 14세는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늘리고, 농민으로부터 과도하게 세금을 걷어 비용을 확보하였다. 각 지방이 크게 저항하지 않은 이유는 루이 14세가 봉건 귀족의 특권과 이익을 보장하면서 이들과 타협하였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위대한 국가 건설을 자신의 최대 목표로 삼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그는 이전에 1만 5천 명에 불과하던 상비군을 65만 명까지 늘렸다. 군사비도 크게 늘려 군사비가 국가 재정의 75%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왕권신수설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사상을 말한다.
권리 장전
「권리 장전」의 승인으로 국왕의 권력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의 제한을 받으며, 국왕이 의회의 동의를 거쳐 통치해야 한다는 입헌주의의 전통이 마련되었다. 이는 미국의 「독립 선언문」, 프랑스의 「인권 선언」에도 영향을 끼쳤다.
권리 장전 내용
제1조 국왕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의 효력을 정지하거나 법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위법이다.
제4조 의회의 승인 없이 국왕을 위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행위는 위법이다.
제6조 의회의 동의 없이 평상시에 상비군을 징집하고 유지하는 것은 위법이다.
30년 전쟁(1618~1648)
스웨덴, 프랑스 등이 신교를 지원하고, 에스파냐가 가톨릭교회(구교)를 지원하는 등 여러 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참가하였다. 전쟁으로 독일 지역에서 인구 약 3분의 1이 감소하였다.
95개조 반박문
상비군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군대를 말한다. 당시 직업 군인(용병)으로 구성되어 있어 유지하는 데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였다.
젠트리
귀족과 자영농 사이의 지주층으로 법률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포함되었다. 주로 토지를 바탕으로 농촌 사회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다.
전제 정치
국가 권력을 개인이 장악하여 민의나 법률에 제약을 받지 않고 실시하는 정치를 말한다.
입헌 군주제
군주의 권력이 헌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재정 군사 국가 특징
16~18세기 유럽에서는 전쟁이 빈번하였다. 유럽 전 지역에서 전쟁 기간의 비율이 95%를 넘었고, 약 3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전쟁이 벌어졌다. 잦은 전쟁은 유럽 재정・군사 국가들의 군대 규모를 더욱 키웠고, 이들 국가는 세금 징수 등을 통해 늘어난 비용을 마련하였다.
16~18세기 재정・군사 국가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다양한 군사 기술이 발전하였다.
중세 말 이후 대포가 사용되면서 돌로 쌓은 높은 성벽은 대포 공격으로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이에 대포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성채(성과 요새)를 별모양으로 세우는 등 새로운 시설을 도입하였다.
16세기 이후에는 점차 손에 들 수 있는 화승총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화승총은 화약을 채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열로 정렬하여 교대로 돌아가면서 총을 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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